그리스도인과 친절

7월 14일 주일예배

그리스도인과 친절

에베소서 4:25-5:2

들어가는

지난주에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중 ‘자비’는 본래의 뜻이 ‘친절’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과 친절’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생각해보았던 에베소서 5:19-21을 보면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버려야 할 일들이고 성령의 열매는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윤리적 전통을 중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곧 삶이었습니다. 믿음으로써 의인이 된 사람은 믿음으로써 살아야 했습니다.

 

1. 신앙과 윤리

기독교신앙에서 믿음만 중요하고 생활 자체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에 있어서 삶과 윤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실제의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공허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삶에 믿는 자의 특징이 없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과 언어습관과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라 말 할 수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 문장의 특징은 부정과 긍정, ‘하지마라’와 ‘하라’가 교차된다는 것입니다.    니다. 25절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28절은 도둑질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29절은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31,32절에서는 악독과 노함과 비방 등을 ‘버리고’ 서로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의 행동은 소극적으로 악에 속한 언행을 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에 속한 언행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듯 우리를 용서하옵소서”하는 기도는 ‘우리의 용서하는 태도에서 용서받은 사람임이 확인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이치에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 함은 하나님을 향해 삶의 방향을 의지적으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16-20)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 그리스도인과 친절

그리스도인의 친절은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겸손

첫째는 겸손입니다. 기독교적 겸손이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서 나오는 순결함과 순수함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자아를 이해함으로 비롯되는 내적인 자아통제입니다.

(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9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10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환대

성경 속에서 친절은 종종 환대(hospitality)하는 성품으로 표현됩니다.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히브리서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어떤 조직에서든 친절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을 환대하고 영접하는 성품’의 원천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3:1)”고 했습니다.

(레 19:33-34)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34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환대는 하나님에게는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기회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환대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엠마오의 제자들은 나그네를 환대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칭찬 : 긍정성

그리스도인은 긍정적입니다. 친절은 긍정성입니다. 성도가 낙관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성품의 사람은 칭찬을 잘 합니다. 항상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에 익숙하고 칭찬해주려 노력합니다.

냉소적이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에는 칭찬해주고 나쁜 결과라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비관적인 태도와 경멸하는 말들은 그리스도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현실감각도 아닙니다. 핑계를 찾기에 익숙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이 화통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해주고 불편한 환경에서도 긍정적입니다.

블랙커비의 “영적 리더십’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 대대장으로 부임한 노먼 슈와즈코프 대령이 작전지에 도착했을 때 선임 대대장이 그를 맞았습니다. “저보다 잘하시겠지요. 최선을 다했지만 형편없는 대대입니다. 사기도 형편없고, 전과도 형편없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는 악수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만 빼고 모든 사람, 모든 환경을 탓하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슈와즈코프는 훌륭한 리더였습니다. 그는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고 조직을 발전시키고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강한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걸프전 최고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태도와 마음에 각별히 유의해야합니다. 자신에게 비관적, 냉소적, 비판적 태도가 생기면 그 원인을 따져 봐야합니다.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약속보다 사람들의 상태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거나, 교만때문에 사고력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간다는 것은 은사나 재능이 많아서가 아니고 특별히 성품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해 온 경험이 많을 뿐입니다. 단지 하나님과 동행해 온 세월이 긴 편일 뿐입니다. 성령이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실 때를 식별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실 기회를 가려냅니다.

지도자는 갑판위의 선장처럼 하나님이 역사하는 곳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과 딴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합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잠재력으로 자리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