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플러스 알파

5월 19일 청년주일예배

창세기 15:1-

들어가는

타고르의 ‘신께 바치는 노래’에는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는 걸인입니다. 마음에는 늘 님이 나타나 나를 구해줄 거라는 꿈을 갖고 살지요. 어느 날 황금마차가 꿈처럼 나타났습니다. 나는 희망에 부풀었고 나의 불운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황금마차가 내 앞에 멈추고 님은 부드러운 미소로 나에게 오셨습니다. 나는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님은 나에게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내게 무엇을 주려고 왔는가?” 나는 잠시 당황하다가 내 전대에서 작은 낟알 하나를 꺼내어 님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님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그냥 떠나 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동냥자루를 털었을 때 그 초라한 누더기 속에서 작은 황금 낟알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나는 놀라움과 뉘우침으로 울었습니다. “왜, 나는 님에게 나의 전부를 바치지 못했을까요?”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헌신이 부족할 때 우리는 비슷한 후회를 할 수 있습니다.
청년은 꿈을 먹고 살고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의 특징은 미래에 있습니다. 청년의 시간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사용되고 청년의 생각은 미래에 대한 꿈으로 채색됩니다. 그렇지만 꿈과 미래가 청년의 전유물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이미 노인의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은 미래를 보여주면서 꿈을 꾸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아브라함은 생각의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아브라함에게 ‘자신은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상급은 ‘더 해주는 플러스 알파’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 인생에 플러스 알파가 되실까요.

 

1. 하나님의 방패

요즈음 한반도 정세를 보면 온통 증오의 대결장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정치 경제 심지어는 종교계에 까지 증오와 복수로 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증오에 익숙하고 분노로 가득한 사람은 건설과 회복에 서투르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경쟁과 대결 속에서 마음에 평안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의 경우도 그러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때였습니다. 배경은 조카 롯이 침략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군대를 이끌어 조카 롯을 구했지만 이는 주변 나라들을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또 다른 전쟁의 두려움을 낳게 된 것이지요.
잇따라 다가오는 경쟁의 두려움에서 우리의 청년들, 아들 딸들은 안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취의 행복보다는 뒤따라오는 경쟁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힘들어 합니다. 늘 칭찬을 받던 학생은 그로인한 강박감이 있습니다. 영아 스트레스도 있습니다. 어른들이 칭찬해주면 칭찬을 받기 위해 착한 행동을 합니다. 그렇다면 칭찬받으면 행복할까요. 아니요. 마음은 더 깊은 불안함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에 처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의
아브라함이 가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 중에는 유업을 이어갈 자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곁에서 헌신적으로 돕고 있는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고 계획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네 상속자는 네 몸에서 날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자신의 계획이 다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의지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해 하나님은 “6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에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인정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계획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청년들이 때로 인생의 어두운 때를 맞을 때, 자신의 꿈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있을까요.
로마서 4: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3. 하나님의 계획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7절)”
청년의 때에 중요한 삶의 태도들이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좋은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플러스 알파는 하나님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람이 계획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농부가 봄에 아무리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려도, 적당한 때에 비가 오지 않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그 해 농사는 망치는 법입니다.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어도 시험을 치르는 날, 갑작스런 일이 생겨서 시험을 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습니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석권했던 유일한 영화는 ‘벤허’입니다. 오늘날 스필버그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헐리우드에서 아무리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대작을 만들어도, 다시는 ‘벤허’ 같은 영화는 만들 수 없으리라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의 견입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윌리엄 와일러는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 “하나님, 이 영화를 정말 제가 만들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만든 영화 속에서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를 믿는 자에게, 그리고 겸허하게 그 플러스 알파를 구하는 자에게는 이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끝없는 경쟁에서 불안할 때 하나님의 방패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계획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에 빠지지도, 반대로 실패했다고 해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청년들이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을 믿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끝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이 곧 성공입니다.

해부학 책을 보면 우리 배 속에 흔적만 남아있고 피는 흐르지 않는 혈관 하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배꼽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이 혈관은 한글로 굳이 표현하자면 ‘배꼽동맥(umbilical artery)’ 의 흔적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모두 뱃줄을 달고 나옵니다. 엄마 배 속의 아기 에게 탯줄은 유일한 생명선입니다. 탯줄 안에 혈관이 있고 이 혈관을 통해 아기는 엄마로부터 필요한 영양과 모든 물질을 공급 받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 혈관은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가가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탯줄은 끊어지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이 혈관은 차츰 퇴화되어 마침내 흔적만 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vessel) 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는 히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그 ‘혈관’ – 그리스도인을 통해 더 많은 펴가 흘러 혈관은 더 튼튼해지고 커져서 더 많은 생명의 피를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라스도인을 통해 흐르던 하나념의 은혜를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고 더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마침내 주변의 다른 혈관이 자라나 그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