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

1월 20일 주일예배

 

고린도전서 10:23-33

들어가는 말

이달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입니다.

잠깐 지난 시간의 내용들을 점검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신자가 예수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모든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의인으로서 인정함을 받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두 가지 칭의를 주시는데 첫째는 죄로부터 둘째는 믿은 이후의 행위에 대해 의롭다 인정해주십니다. 그 이유는 신자가 믿은 후 일지라도 영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직 죄의 영향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함은 아직 죄의 부패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행위에 의롭다 인정하시고 그리스도의 순결로 덮어주시며 그것에 상급을 인정해주십니다. 이것이 칼빈이 말한 ‘이중칭의’입니다.

그래서 첫째날에 말씀드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 율법과 율법주의의 관계 그리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정리를 했습니다.

둘째날 ‘양심의 자유’란 신자의 믿음으로 죄책으로부터 자유해지고 정죄로부터 자유하며 선한 양심의 자유가 있고,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누리는 것,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양심의 자유’란 우리의 본래의 양심과 의지는 완전히 타락하였지만, 성도가 죄로부터 떠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신자는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죄에서 구원받은 신자가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고 “인생의 모든 순간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J.A.핫지).)“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할 때 세 가지 선택을 합니다. 신앙의 선택, 교회 공동체의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입니다.

 

  1. 신앙의 선택

신학자 핫지에 따르면 신자의 ‘양심의 자유’는 ‘어떤 권력이나 체제를 거부하는 자유’가 아니라 ‘죄로부터 떠나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유’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인생의 대과업을 마쳤을 때 백성들에게 신앙적인 결단을 촉구했습니다(여호수아24:15-18).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전에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는 사단의 권세를 따랐습니다(엡2:2). 그때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롬6:17-18).

순종을 위한 선택으로서 신자의 ‘양심의 자유’는 십자가를 통해 주신 ‘죄로부터의 자유’에 근거합니다. 구원의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설 때 하나님은 그 결단을 의롭다 인정해주시고 신자는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 (여호수아24:15-18)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 (롬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 교회 공동체의 선택

(1) 교회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타락하고 욕을 먹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는 믿는데 교회는 안나간다는 ‘가나안(안나가)’교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바쁜 생활에 예배 참석이 어려우니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이 편리위주의 경향이 짙어집니다. 심지어 교회가 필요 없다는 무교회주의도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해졌습니다.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우리가 소속하고 있는 지역교회이며, 보이지 않는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함께 이루는 천상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잊지 말아야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이미 무형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신앙고백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우리의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적용하시는 성령께서는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성도와 거룩한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와 한 몸을 만든다는 뜻, 즉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서 한 몸이 되게 하십니다. 인류 역사의 심각한 타락과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한 지체가 되었음은 신자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와 복이 있을까요?

둘째, 지역교회의 일원이 되어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를 생각해봅시다. 오늘날의 한심한(?) 교회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어느 때에 교회가 부끄럽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요. 작게는 내가 신자가 되어 ‘거룩한 성도’로서 살아간다고 했을 때 언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타락의 길을 걷던 신자가 구원 이후에도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모습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다면 그 모임은 오죽할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세우시고(마16:18),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삼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으셔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가십니다. ‘심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은 지금까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2) 교회의 사명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마는 이제 우리가 교회 공동체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살펴봅시다. 사람마다 성품이 다르듯이 지상교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교리가 다릅니다. 이것이 교단이 다른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역교회는 교단에 속해있습니다. 그 의미는 ‘믿는 바 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역교회의 세례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 교리공부를 끝내고 ‘내가 이 지역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이 교회의 일원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선택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지역교회를 정하는 것은 신자의 자유와 선택에 따르며, 이 때에 그 교회가 믿는 바 신앙쳬계로서 교리도 받아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공부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규칙을 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요리문답 2항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즐거워하는 법칙은 신구약성경’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를 교리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방대한 책입니다. 평생을 연구하며 가르쳐도 다 마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들을 요약해서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믿는 사람에게 성경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혹은 기존 신자라 할지라도 신앙의 기초를 점검해보고자 할 때는 교리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자에게 교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믿고 따르기를 선택한 것이며, 교리는 성경을 요약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교회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딤전3:15).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성경 진리를 믿고, 수호하며, 전파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교회가 진리를 바르게 전파하며 신자들이 그 길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가입니다.

  • 소요리문답 문2: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습니까? 답: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 (마가복음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

예수를 믿을 때 성경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등록할 때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자의 의무입니다. 그것은 ‘신자의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양심과 의지로 선택했고 그 교리와 교회를 내가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의 선택기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음식에 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음식들 중에는 신전에서 제물로 사용했던 식품들을 내다 파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신자로서는 그 음식을 먹든 먹지 않든 자유가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시험거리나 비방거리가 된다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 교리적인 문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입니다. 그 심각한 결과에 대해 6-12절까지 자세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는 다수를 따르지 말라고 본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물은 중립적인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신자에게는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해야 합니다.

  •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전 10:6-12)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