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 (1)

3월 1일 주일예배

이렇게 기도하라 (1)

마태복음 6:9-13,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에 대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경건일 것입니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이 풍성한 체험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기도는 순종을 유발하고 살찌우며 마음이 순종을 갈망하는 적절한 ‘생각의 틀’을 갖추게 합니다.
물론 지식도 중요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지식과 진리는 추상적인 것에 머물고 맙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영감을 불어넣으며 조명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내적 증거를 주시고, 우리가 기도로 아버지께 반응하도록 도우십니다.
기도와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더없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메마르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영성이 깊은 감성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줍니다.
기도를 거짓 동기에서 하기는 어렵습니다. 숱한 거짓 선지자들처럼 거짓 동기에서 설교를 할 수도 있고, 거짓 동기에서 그리스도인의 활동에도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거짓 동기에서 숱한 종교의 껍데기를 걸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부적절한 동기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하면 신자의 삶은 정체되기 쉽습니다. 기도에 소홀히 할 때 베드로는 검으로 군대와 맞서려 했고, 마음만 앞섰지 결국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때 넘어지면 사람들 앞에서도 넘어집니다.

1. 기도자를 위한 기도

오늘 본문에 주목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패턴을 찾아봅시다. 기뻐함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기쁨을 찾고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데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범사에 감사를 찾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같은 패턴으로 기도를 설명해봅시다.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쉬지않고 기도할 수 있는데 너무나 자주 우리는 기도를 멈춥니다. 그래서 주님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의 유익에 대해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의 유명한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굳이 아뢰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고 우리에게 어떤 방편이 필요한지 아시니까, 마치 그분 깨우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애써 우리의 기도로 그분을 닦달하는 게 어쩌면 쓸데없는 짓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기도를 명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뜻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갈망하고, 유익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로 이 사실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그분에게 합당한 것을 그분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을 예배하는 데 사용되는 이러한 희생의 유익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따라서 거룩한 선조들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유익을 더 자신 있게 칭송할수록 기도할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분께 간구하는 일은 지금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첫째,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마다 거룩한 닻이신 그분에게 피하는 습관이 몸에 밸 때,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찾고 사랑하며 섬기려는 뜨거운 불길로 타오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의 모든 소원을 그분의 눈앞에 내어놓으며, 우리의 온 마음을 그분 앞에 쏟아놓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바람과 소원을 그분께 아뢰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그분의 은혜를, 우리의 기도가 상기시켜주는 그분에게 온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에는 분명히 능력이 있고, 응답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이키는 것이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기도의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마술도 아닙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33-34절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들은 놀라운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이며 기도의 용장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그러나 그 기도의 능력은 언제나 좋은 일 형통한 일 지켜주시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연이어 말씀합니다. 35-38은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들의 기도의 방향은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39-4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요한복음 9장 31절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2.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3.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4. 요한일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5. 요한일서 5장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2. 기도에 장애가 되는 것

시편66:18에서 다윗은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뜻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기도가 헛수고가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여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은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죄와 타락은 너무 깊은데 내가 입은 의는 너무 깨끗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감사가 있고,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참회의 눈물이 사무칩니다.
우리는 경건할 수록 더 경건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죄를 더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한 신자가 불만을 토로합니다. 자기 친구가 있는데 늘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되지 왜 죄를 짓고 날마다 용서해달라고 우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은 20년동안 죄를 짓지 않았고 기도할 때 그렇게 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이 말합니다. ‘아니요, 당신이 불쌍합니다. 지금 그 말은 20년동안이나 제대로 된 기도를 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시편 기자의 고백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마음에 품은 채 기도하는 사람, 죄를 부여잡고 놓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려는 사람은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교만한 죄인은 그리스도를 우너하고, 자신의 파티도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원하고, 자신의 정욕도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원하고 자신의 고집도 원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오직 그리스도만 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독한 마음을 가지고 저주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주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께 더욱 불순종하도록 더 큰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합당치 않을 겁니다. 죄로 가득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를 하나님도 존중하지 않으십니다.
신자들 사이에 괴상한 기도 이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수인 취급하는 기도자들이 있습니다. 기도는 마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쪼르르 달려와 우리의 변덕을 빠짐없이 맞춰주려고 대기하고 기다리는 천상의 사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신자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전쟁과 암이 사라지도록 합심해서 기도한다고 이들의 기도가 당장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세상에는 전쟁과 질병이 있습니다. 전쟁과 질병이 정해진 때보다 앞서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와 질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로하고, 건지시며, 우리를 치료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치유가 언제나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치유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개념입니다.
뇌성마비를 앓았던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년의 믿음은 생기가 넘쳤고, 성격도 옆 사람까지 즐겁게 할 만큼 쾌활하고 낙천적이었으며, 남달리 생산적이기까지했습니다. 대학도 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이런 청년이 어느 날 목사님께 사무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귀신들렸다고 생각하세요?” 청년은 이렇게 물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묻나요?” 청년은 그간에 일어난 일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은 성경의 약속을 ‘붙잡고’ 청년이 뇌성마비에서 놓여나도록 ‘합심해서’ 기도했다는 겁니다. 친구들은 청년에게 손을 얹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고, 청년이 곧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낫는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자, 친구들은 청년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청년을 탓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청년의 극심한 죄가 치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청년이 귀신들렸다고 했으며, 청년은 마음에 말로 다 못할 상처를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고, 이들은 열심만 있으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미성숙할 뿐 아니라, 오만과 뻔뻔함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3.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을 교훈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사용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기도는 거룩한 하나님을 꿈꾸며 하늘을 향해 실제로 걷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