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성령에 충만한 사람의 표지는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성령의 은사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열매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성령 충만에 대한 핵심을 잘 설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어떤 범상치 않은 영적인 경험, 즉 신비스럽고 황홀경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외부적인 현상만을 가지고는, 이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적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신비한 체험과 초자연적 역사가 있습니다. 방언, 예언, 병 고침 그리고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것들이 사탄의 역사도 될 수 있습니다.

무당을 보십시오. 무당 역시 신들과 접하여 황홀경에 빠져 작두 위에서 춤을 추고 환상을 보기도하며, 귀신과 대화도 합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기준으로 성령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무당이 그 누구보다 가장 성령 충만한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가장 많이 체험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신비로운 체험을 한 무당은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닌 귀신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 충만이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이란 전인격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한 자는 전인격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면 살아갑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한 자는 예수를 나의 주로 시인함, 고백함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3). 또한 나의 삶과 인생의 주되심 (Lordship)의 입술의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맺히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한 자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분별할 수 있길 원합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한 성도로서 성령님이 나의 인생의 주되심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길 원합니다.